우왕궁은 호광회관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탕산진 장정로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남쪽에 위치하고 만수궁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명나라 만력 15년 (1588년)에 지부 임대경이 수립되기 시작하여 “수부각”이라 불렀다. 청순치 14년 (1657년)에 훼멸되였다. 강희 55년 (1716년), 지부 황량좌가 재건되였는데 면적은 1,300 평방미터였다.
궁전은 네 면에 벽돌로 담을 쌓고 꼭대기의 벽돌로 테를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 오옥이 높이 솟아올랐다. 남벽 정중앙에 있는 패루식 산문, 액자"우왕궁"세 글자로 만들었다. 궁내 건축물은 희루, 정전, 후전으로 나뉘며 전후에 2 석원이 있고 원좌우에 종고루가 있다. 해방후 우왕궁은 량식창고로 개축되였고 공연대는 철거되고 개축되였다. 1967년 문화대혁명 초기에는 산문의 흙 인형과 대련, 궁궐 안의 조각들을 사구(四 旧)로 간주하여 훼손하였다.
1985년 8월, 석전현인민정부는 2,000위안의 금전보상금을 지급하여 산문을 수리했다. 1984년에는 석전현의 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하였다.
동악묘는 부성 남문안에 위치하여있고 무묘북쪽에 위치하여있으며 면적이 약 1,000 평방미터이다. 명만력 34년 1606년 지부강 대곤이 시작됐다.
청순치 14년 (1675년)에 훼멸되였다. 미희(糜熙) 27년 (1688년), 지부 채정부가 재건을 맡았다. 묘지는 너비가 17미터이고 길이가 37미터이다. 남북으로 담이 있고 한가운데 돌담이 상하로 쌓아져 있다. 건축배치는 3대로 나뉘는데 첫번째 배구는 산문이고 서쪽을 향했으며 액서"동악묘"라는 세글자이다.
문안 양 행랑방은 “무상” 부부의 입상을 만들고 의모를 이상하게 하여 “구혼사자(勾魂使者)”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남북의 두 사랑채로 각각 다섯 칸이 있는데 “십전염군”의 상을 채색하여 흉악한 귀신으로 무시무시하게 하였다.
세 번째는 정전(正殿)으로 “동악대제(东岳大帝)”,”지장왕보살(地藏王菩萨)” 등의 좌상을 만들었다. 해방 후 조각상과 비석이 모두 부서졌다. 1958년 성관화공장이 절에 설치되어 공장 건물로 바뀌었다. 또다시 방역소 직원 숙소로 바꿨다. 옛 건축물의 주체 구조는 아직 완전하다. 1986년에는 석전현의 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했다.